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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익혼 시인 - 대전시립미술관 프랙탈 거북선 속 승조원이 되다 - 2020 현대시문학(겨울호) 신인상 수상작

힐빙문학

by 힐빙코치'힐빙스' 2020. 11. 2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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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익혼 시인 - 대전시립미술관 프랙탈 거북선 속 승조원이 되다 - 2020 현대시문학(겨울호) 신인상 

현대시문학 신인상 - 윤익혼 시인

 

◆ 대전시립미술관 프랙탈 거북선 속 승조원이 되다 / 윤익혼

 
한적한 공간에 벽을 세울 것이다

마음속 설계도가 힘내어 벽을 세워가고

톱질과 망치질의 운율은 신명을 더해간다

옷깃을 자꾸만 비집어대는 스산한 겨울바람

이내 굵은 땀방울의 위세에 눌려 쫓겨 

패전한 왜구처럼 달아난다 

나는 명량해전 거북선 판옥선의 노 젓는 병사다

어깨 굳세고 위세 높은 장수도, 현란한 무공의 병사도 아니라서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나 같은 이들 모여 거북선 움직여 나라를 구해냈다

쉴 새 없이 노를 젓고 시멘트를 부려 나라를 구해냈다.

내가 올린 철근으로 거북의 등엔 무수한 가시 창들이 쑥쑥 돋아났었고

목재에 못을 두들기고 쇠줄 단단히 묶어 조선朝鮮을 조선造船했었지

알아주는 이는 예도 지금도 여전히 없지만

나는 세상을 구해냈지

나도 세상을 구해냈지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외쳤어

내가 바로 조선의 민초다

수백 년 전에도 위대했던 나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못할지라도 나는

전설과 현실을 오가며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나는

오늘 대전시립미술관에 왔다

프랙탈 거북선 속에서

나는 다시 승조원이 되었고 

수백 년 전 그때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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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상 심사평

‘그 나이였다
시(詩)가 내게로 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 -(파블로 네루다, ‘시가 내게로 왔다’ 중에서) 

​시(詩)는 어쩌면 별과 같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기 전에는 그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지만, 어느 날 외로운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기 언제나처럼 태연히 반짝이고 있다. 알고 보면 단 하루도 빛나지 않은 날이 없건만, 사람들은 그것을 잊었다가 다시 찾는 것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시심(詩心)을 되찾게 된다. 어린 날 좋아했던 시로부터 시작하여 마음이 가는 새로운 시를 찾아 읽고, 베껴 적거나 외워 노래하고, 그러다가 감동이 끓어오르면 스스로 시를 짓기 시작한다. 이것이 시의 시작이며 시인의 기원이다. 화초를 심다가 농부가 되고, 고기를 낚다가 어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시를 심사하고 시인으로 불릴 자격을 가린다는 것은 좀 외람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심사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취미로 낚시를 즐기는 일과 직업적으로 고기를 잡는 일을 구분하는 것과 유사하다.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는 모든 사람을 ‘어부’라 부르지 않는다. 낚시꾼은 그야말로 자기 즐거움을 위하여 취미의 낚시를 즐기거니와, 언필칭 어부라면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밤이거나 낮이거나 그 일에 전념하여 대중의 식탁에 기여한다는 의무감마저 지닌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시인(詩人)’의 길에 들어서려는 사람은 소금냄새 찌든 작업복과 비린내 나는 어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때로는 물속까지 들어가 고기를 잡아 올릴 마음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마음자세를 살피는 것이, (외람되게도 시를 심사하는) ‘신인상’이라는 통과의례의 취지임을 먼저 상기시키고자 한다. 

2020년 겨울 신인상 공모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들어왔다. 며칠 동안 밑줄을 그어가며 1백여 편의 작품을 읽었다. 심장을 뛰게 하는 참신한 시구(詩句)들 사이에서 느낀 즐거움이라니. 그건 아예 황홀이었다. 

‘하늘빛 바다, 바다빛 하늘이 서로 닮아있듯…’ ‘우린 수십만 년을 헤엄쳐 일깨워진 존재 일깨우는 존재’ ‘함부로 외로워 보이지 말 것’ ‘기다리는 일 이건 나의 재주예요’ ‘비어 있어 더 단단해지는 밤거리’ ‘벌레는 제 갈 길을 알고 가는가… 책상 위 생각은 제 갈 길을 알고 가는가’ ‘내 마음은 물살도 비껴가는 바위’ ‘쇼팽은 칠월의 뒷다리를 물고 계속 피아노를 치고 있다’ ‘서투른 일이 있어요 그대의 마음 헤아리는 일’ ‘날개가 투명한 새벽’ ‘노선비는 한번 들어가서 나올 줄을 모르고’ ‘나의 입이 색소폰 리드였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나에게 노란어린연꽃이다’ 등등! 

송규성의 ‘환절기’ ‘대전시립박물관 프랙탈 거북선 속…’은 가슴을 때리는 메타포가 있다. ‘이별 후 다시 서는 법’은 첫 연과 마지막 연이 덧문과 후문 역할을 하면서 그 내부에 섬세한 감성의 시편을 단단히 보호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색다른 실험적 기법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김정철의 ‘그리운 모퉁이’는 평범한 주제 평범한 언어로 쓴 평이한 작품인데, 뭔가 읽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녹여주는 마력을 지녔다.

이경후와 성가영의 작품들은 오랜 수련의 흔적이 엿보인다. 특히 ‘가을이 오면’은 첫 연 하나만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예닐곱명쯤 당선으로 꼽고 싶지만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주제나 수사에서 뛰어난 작품이라 하더라도 역시나 아쉬운 부분들이 예외 없이 남아있기 때문에, ‘완성도’를 기준으로 후보작을 추려보았다. 

특히 주제가 너무 평이하거나 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여 색다름을 느끼기 어려운 작품들을 먼저 제외하였고, 시어(詩語)나 수사가 진부한 작품들을 다음으로 제외하였다.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작품이 이미 공개된 경우 심사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응모자들은 주의해야 한다. 

현대시문학 2020년(겨울) 신인상은 최종적으로 송규성(‘환절기’ ‘대전시립미술관 프랙탈 거북선의 승조원이 되다’) 한 사람을 선정한다.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정명, 이석원, 장계현, 양태철 

▶ 출처: 시전문 문예지 '현대시문학' 2020년 겨울호

 

힐빙칼럼 힐빙뉴스(힐빙티스토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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